X-T5에 대한 인상

이번 촬영의 주 무대는 나가노현 북쪽에 있는 시가고원으로 정했습니다. 이곳에 대해 알게 된 지는 20년도 넘었고, 몇 번 와본 적도 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을 촬영하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지난 4년간 매달 이곳을 찾고, 이번 달은 한 달의 거의 1/3을 이곳에서 보내다 보니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 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저는 X-T5를 갖고 시가고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진가로서 신형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X-T5가 제 기분에 어떻게 반응해 이를 표현해냈는지 독자 여러분과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실적인 자연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풍경 사진가란 세상의 모습을 얼마나 실제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물론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 바람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했었는데요… 울창한 원시림에서 테스트해본 결과, 표현주의자로서 리얼리즘에 극히 가까운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어 무척 흡족했습니다. 4020만 화소 센서의 해상도 덕분에 표현주의자로서 제가 추구하는 자연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낸다는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X-T5 & XF10-24mmF4 R OIS WR

안개 낀 숲속을 걸어가다 보면 마치 일부러 길을 막기라도 하듯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불쑥 나타납니다. 낮은 앵글에서 풍경을 올려다보면 숲의 숨결과 냄새, 주변에 배회하는 짐승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이 사진으로 그런 기분이 전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X-T5 & XF10-24mmF4 R OIS WR

제 눈앞에 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하나가 나타났는데, 모양이 마치 긴 코를 공중으로 높이 치켜든 커다란 코끼리 같았습니다. 낮은 앵글로 이 기이한 모양을 포착하니, 뭔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셔터 스피드는 1/8초였지만, 파워풀한 손 떨림 보정 기능 덕분에 핸드헬드로 촬영할 수 있었고, 정확히 제가 의도한 그대로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X-T5 & XF8-16mmF2.8 R LM WR

코끼리 코를 지탱하는 커다란 바위 뒤에 동굴이 있고, 그 안에 한 사람 정도는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어서 X-T5와 XF8-16mmF2.8 R LM WR를 들고 기어들어 가 머리 위에 뚫린 구멍을 통해 숲을 올려다보는 구도를 취했습니다. 불편한 자세를 참고 핸드헬드로 몇 장 촬영한 결과, 초현실적인 공간 너머 펼쳐진 세계를 현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X-T5 & XF8-16mmF2.8 R LM WR

이끼로 뒤덮인 쌍둥이 나무입니다. 4020만 화소로 이끼를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고 앵글은 똑바로 위를 올려다보게 잡은 다음, 카메라 뒷면의 3방향 틸팅 LCD를 빼냈습니다. 덕분에 섬세한 이끼 표현이 완벽하게 도출되었습니다.

중요한 찰나에 반응하는 법

풍경은 사진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모습을 바꿉니다. 때로는 가만히 머물러 있고, 때로는 눈 깜빡할 사이 모습을 바꾸어 사진가를 도발합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사진가의 파트너로서 반응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합니다.

X-T5 & XF50-140mmF2.8 R LM OIS WR

빠르게 달리는 구름이 산 너머로 떠갈 때나 풍경이 쉴 새 없이 변할 때는 최대한 빨리 촬영 위치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X-T5는 이전 모델보다 그립이 깊고 단단해 쇼트를 놓치지 않고 그런 경치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X-T5 & XF16-80mmF4 R OIS WR

소금쟁이가 수면 위에서 바쁜 걸음으로 움직입니다. 동시에 해 주변에 나타난 색색의 구름이 물에 반사되어 다양한 색과 무늬가 섞인 경치가 탄생합니다. 핸드헬드로 몇 장의 이미지를 촬영하면서 소금쟁이의 움직임을 뒤쫓다 보니 소금쟁이 여러 마리가 서로 섞이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무늬가 생기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X-T5 & XF70-300mmF4-5.6 R LM OIS WR

이 장면은 해가 구름과 겹치면서 둥그스름한 테두리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구름이 빨리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해의 위치와 구름의 모양을 바람직한 구성으로 담아내려면 사진가의 재빠른 동작에 잘 반응하는 카메라가 필수적입니다. 저는 핸드헬드 촬영 방식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색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포착하다”

제가 X 시리즈를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필름 시뮬레이션입니다. 특히 벨비아를 사용하면 아침과 저녁에 촬영한 풍경에 극적인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고 의지하는 편입니다. X-T5로 촬영하고 뒷면 모니터에 표시된 이미지는 벨비아를 사용했든 하지 않았든 영감을 자극하고 또 다른 이미지를 촬영할 의욕이 샘솟게 해주었습니다.

X-T5 & XF16-55mmF2.8 R LM WR

고원은 대초원의 녹색으로 뒤덮여 있고, 하늘은 노랑, 주황, 파랑 등 여러 색이 맨 밑에서부터 맨 위까지 겹쳐지며 그라데이션을 이루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절대로 사후에 과장되게 보정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필름 시뮬레이션을 적용한 결과물입니다. 정말 매혹적인 색상입니다. 이래서 X 시리즈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X-T5 & XF16-55mmF2.8 R LM WR

이 장면은 산길에서 보이는 운해 위로 해가 떠오르던 순간입니다. 구름 위 하늘은 그을린 금빛이고, 구름은 약간 푸르스름하며, 전경의 경사에는 노랗게 색이 변해가는 무늬왕호장근 잎과 아직 초록빛을 잃지 않은 잔디가 있습니다. 오로지 풍부한 색채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아침 풍경입니다.

X-T5 & XF16-80mmF4 R OIS WR

이것은 해 지기 직전의 풍경입니다. 구름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경치 전체에 역동적인 느낌이 듭니다. 구름 낀 날씨이긴 해도 맑은 파란 하늘도 보여서 초가을이라는 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녁 햇살이 전경의 잔디를 비추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따뜻한 색조로 장면 전체를 감싸 안았습니다. X-T5의 진정한 정수는 사진에 담긴 내용을 전하는 색상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테일을 향한 시선”

X-T5가 훌륭한 이유는 4020만 화소 덕분에 광활한 풍경 촬영이라는 범위에 자신을 가두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광대한 풍경은 사진을 아무리 크게 인쇄해도 실제를 넘어설 수 없지만, 발밑의 작은 풍경은 현실을 능가하는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전에도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지만, X-T5를 잡는 순간 저절로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X-T5 & XF80mmF2.8 R LM OIS WR Macro

거미줄에 물방울이 맺혀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입니다. 주변의 빨간 참빗살나무 열매를 블러 포인트로 사용했습니다. 포커스는 거미줄 한가운데에 맞췄습니다. 이미지를 확대해보니, 물방울이 아름답게 포착된 것은 물론이고 거미줄의 주인인 거미마저 실물 느낌이 뛰어나 깜짝 놀랐습니다.

X-T5 & XF80mmF2.8 R LM OIS WR Macro

이건 느닷없이 시야 끝에 버섯 무리가 들어왔을 때입니다. 썩어가는 나무 한 그루에 마치 대가족이 모인 듯한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버섯에 렌즈를 대보기로 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실은 포착하기 어려운 피사체이지만, 배경을 밝게 블러 처리하고 버섯 무리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X-T5 & XF150-600mmF5.6-8 R LM OIS WR

원추리 꽃봉오리 위에 잠자리가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피사체가 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슈퍼 원거리 줌 렌즈를 사용하면 잠자리를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안 또 다른 잠자리 한 마리가 갑자기 화면을 건너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 셔터를 눌러 포착할 수 있었던, 예기치 못한 장면입니다.

X-T5 & XF50-140mmF2.8 R LM OIS WR

연못가에서 발견한 작은 풍경입니다. 구부러진 이파리 위에 맺힌 빗방울이 뒤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에 영롱하게 빛납니다. 이 장면에는 필름 시뮬레이션 “클래식 네거티브”를 사용했고, 일부러 색 정보를 제한해 물방울이 두드러지게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디테일을 의식한 결과 이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풍경 사진 적합성”

현장에서는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g이라도 가벼운 게 좋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장비는 튼튼해야 하고, 다루기 쉬워야 합니다. 또한 렌즈가 아무리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잡아낼 만큼 해상도가 뛰어나야 합니다. 사진가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만…

제가 꿈꾸는 이상향에는 끝이 없지만, 다양한 기능을 갖춘 X-T5는 풍경 사진 도구로 충분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카메라입니다. 화소 수가 대폭 증가한 X-T5에 저는 큰 기대를 품고 있으며,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이 카메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X-T5 & XF16-55mmF2.8 R LM WR

퍼붓는 빗속에서 촬영할 때 날씨에 강한 바디와 렌즈 조합을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은 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X-T5 & XF10-24mmF4 R OIS WR

산 가장자리로 지는 해가 수면에도 비치던 순간입니다. 하프 ND 필터를 사용하고 타이머를 사용했으며, 촬영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면서도 이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척 서둘렀습니다. 어려운 장면이었지만, X-T5는 정확히 제가 원하는 순간을 포착해 냈습니다.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야생을 탐방하는 데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대단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함께한 카메라가 온 마음을 다해 믿는 존재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X-T5는 기존의 껍데기를 깨고 비할 데 없는 해상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빠르고 유연한 촬영 기능을 완비했습니다. 이 카메라가 사진가를 어디까지 이끌어줄지, 얼마나 넓은 세상을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