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8 FUJIFILM

X-Pro3 Stories #3 Aged or Damaged

저는 언젠가 Charlene Winfred가 가진 X-Pro1을 보고 디지털 카메라의 노후화 과정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성능은 2년마다 두 배로 좋아집니다. 무어의 법칙에 따른 유명한 예측으로 익히 알려져 있듯이, 2년만 있으면 디지털 카메라 구조에 사용되는 주요 구성품인 센서와 프로세서 성능이 놀랄 만큼 큰 발전을 이룰 것입니다. 이제 중고 카메라 시장이 일반 대중에게도 보편화되었으니,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노후되기 한참 전에 새 모델로 업그레이드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카메라를 오랫동안 계속 사용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Charlene의 X-Pro1(XF35mmF1.4 렌즈 장착)에서 찾았습니다. 실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카메라죠. 정말 중요한 것은 물건이 오래되었냐, 새것이냐가 아니라 그 물건을 좋아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품고 있느냐라는 점이라고 설파하는 것 같은 카메라입니다. 참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Charlene은 정식으로 “X-Photographer”의 일원으로 초청받아 Fujifilm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새 모델이 출시될 시점을 앞두고 여러 가지 카메라를 사용해보는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런 청은 사양하면서 거절의 이유를 X-Pro 시리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전에 제안한 기종은 X-H1과 X-T3였습니다. 거절당했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가!?”라고 반응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후 Charlene에게 이런 카메라는 절대 X-Pro1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혀 누구를 불쾌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을 바꾸었죠.

그때 이후로 저는 최고의 카메라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는 카메라라는 의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는 제품 교체 주기가 길면 곧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사실 고객이 상품을 사자마자 새 모델 판매를 계획하는 것은 좀 이상하죠.

그래서 X-Pro2의 제품 및 프로모션 기획서 초안을 작성할 때가 왔을 때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카탈로그에 오래되고 낡은 X-Pro2 이미지를 싣자는 것이었죠. 이미지에 담은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이 제품이 이렇게 될 때까지 꾸준히 사용해주세요.” 프로모션에 대한 반응은 좋았지만 저는 왠지 형용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어느 행사장에서 X-Pro2 사용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카탈로그에 실린 것과 비슷한, 낡은 X-Pro2를 보여주더군요. 저는 진심으로 “우리 제품이 이렇게 될 때까지 사용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워요.”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알고 보니 그 고객은 카탈로그에 나온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카메라에 오래된 효과를 연출한 것이라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고객은 전문 카메라맨이었고, L사 카메라와 렌즈도 다량 보유한 인물이었죠. 살림이 넉넉하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물론 그 사람의 관점에서는 최신 모델 디지털 카메라에 몇 군데 긁힌 자국이 나는 것쯤이야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듣기로 Charlene의 XF35mmF1.4 후드가 휜 것은 촬영 중에 자동차에 받혀서라고 하더군요. 손상되고 다친 흔적이 남은 장비를 아끼는 이유는 그렇게 이가 빠지고 긁힌 자국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자신과 카메라의 역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긁힌 자국을 직접 만든다면, 누군가가 무슨 사진을 찍다가 그런 상처가 났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걸까요?

물론 이런 것 때문에 X-Pro3를 티타늄으로 제작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티타늄이 튼튼하고 견고한 소재라서 선택한 것이죠. 개발 중에 Duratect™라는 공정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티타늄은 그 자체로 경도가 꽤 높은 편이지만 DURA Silver로 코팅하면 1,500HV까지, DURA Black으로 코팅하면 1,200HV까지 경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스테인리스보다 일곱 배 내지 열 배가 강한 것이고, 이보다 더 경도가 높은 것은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같은 소재뿐입니다. 따라서 평범한 줄이나 칼 같은 것으로는 상처를 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HV” = “비커스 경도 단위(Vickers Hardness Unit)”, 경도를 나타내는 척도). 카메라를 소중히 다루고자 하는 고객에게 특히 이 두 가지 색상을 추천하곤 하는데, 이들 옵션은 티타늄 베이스를 유리하게 활용하여 근사하게 마감되므로 보기에도 무척 근사하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도 나이가 들수록 성숙미가 깃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래서 반무광 블랙 옵션을 넣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발전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무광 블랙 모델에도 티타늄을 사용했습니다. 어디가 긁히거나 도색이 벗겨지면 회색 마그네슘이나 금속재 특유의 광채을 가진 티타늄이 드러날 텐데, 둘 다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소재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선택지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 카메라를 오랫동안 사용하기에 충분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드릴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