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선택
거리 사진은 특정한 유형의 카메라가 필요한 아주 명확한 장르입니다. 작고 눈에 띄지 않으며 빠르고 조용한 데다 우수한 품질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도 기록하려 하는 장면에 끼어들어 방해가 되지 않는 카메라여야 하죠. 이런 카메라는 오랫동안 선택의 폭이 별로 넓지 않았지만, 미러리스 카메라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거리 사진에 적합한 카메라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거리 사진에 딱 맞는 카메라 라인이 하나 있습니다. Fujifilm의 X100 시리즈인데, 콤팩트 카메라 시리즈로 거리 사진에 적합한 초점 길이 고정 렌즈, 빠르고 조용한 작동과 OVF와 EVF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뷰파인더 로 피사체와 진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까지 완벽하죠. 기존 방식의 수동 조리개 링과 셔터 스피드, ISO 다이얼을 통해 쉽게 조절할 수 있어 옛날 거리 사진에 사용한 레인지 파인더 같은 느낌을 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카메라이지만 화질과 취급 방식 면에서 무척 다양한 맞춤 설정이 제공되어 원하는 대로, 또는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제가 Fujifilm X100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 X100F를 통해서였습니다. 처음 써보자마자 바로 사진을 촬영하려는 열의를 가진 카메라라는 인상이 무척 깊이 남았습니다. 항상 준비 완료 상태이고, 빠르고 정확한 오토포커스에 즉각적인 셔터 릴리스까지 겸비해 결국 30년간의 거리 사진 촬영 때마다 제게 제2의 눈이 되어준 모델입니다.
시간을 빨리 돌려 지금으로 돌아오면, 요즘 저는 이 시리즈 최신작인 X100V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질과 속도를 개선하고 센서를 업그레이드했으며 프로세서 속도까지 빨라져 전반적으로 한 차원 보강되었죠. X100V는 표면 디자인이 더 간결해진 것도 특징입니다. 버튼 수를 줄였고 뒷면에 딱 알맞은 위치에 작은 엄지 그립을 배치에 카메라를 다루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한 손으로도 얼마든지 간편하게 다룰 수 있답니다. 또한, 11fps, 4K 영상과 뒷면에 연결한 LCD 화면이 추가되어 원래 거리 사진용으로도 탁월한 모델이었던 카메라가 여행, 다큐멘터리와 라이프스타일 사진 등 전방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재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거리에 다가가기
저는 30여 년간 런던의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지에서 신문 보도사진 기자로 일했습니다. 뉴욕에서 대규모 글로벌 광고 사진도 찍어봤고, 패션화보, 유명인 인물 사진은 물론 전 세계를 아우르는 소셜 미디어 프로젝트도 진행해보았지만 이런 프로젝트 중 어떤 것도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혼란 속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건져낼 때의 어려움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거리 사진가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뒤에 숨을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 카메라와 눈앞에 존재하는 장면의 잠재력이 전부죠.
어떤 카메라를 쓰든 완전히 친숙해져야만 합니다. 작동할 때의 세세한 부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그 정도로 익숙해지려면 어디를 가든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Fujifilm X100F를 쓸 때 항상 23mm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이제 X100V로 바꾸고서도 마찬가지고요. 다시 말해 어떤 장면이 제 눈에 들어오면 뷰파인더를 찾기도 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물러서서 찍어야 프레임을 채울 수 있는지 직감적으로 안다는 뜻입니다. 거리 사진의 제1원칙은 어디를 가든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길거리란 원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멋진 장면을 보여주는 법이거든요
저는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리 사진을 찍을 때 구성미가 있고 의도가 보이는 작품을 좋아하고, 프레임을 정보로 가득 채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장면을 구성할 때도 여러 가지 요소를 찾아 프레임 안 어딘가에 배치하고 몇 가지를 더해가면서 그런 요소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찾아내는 것이 제 작업 방식입니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두어 가지 기법을 동원하는데, 하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세운 채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로 방향의 피사체는 전부 프레임의 양쪽 측면과 평행을 이루게 되죠. 그리고 뒷면 버튼의 포커스를 사용해 카메라 뒷면에 엄지를 대고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초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심점을 벗어나 피사체를 배치하여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X100V같은 최신형 카메라는 높은 ISO에서 우수한 성능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셔터 스피드를 높여 동작을 포착하는 데도 훌륭하고(500분의 1초 이상) 조리개가 작아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선명하게 표현하면서 전경과 후경에 있는 요소를 나란히 대비시키는 촬영에도 좋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사진가가 한발 뒤로 물러나서 사람과 여러 요소가 많은 대규모 구성을 연출할 수 있는데, 저는 이런 접근 방식을 장면 거리 사진(Tableau Street Photography)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Auto ISO 기능을 이용하고 노출 설정을 속도와 피사계 심도에 맞춥니다. 그러면 카메라가 ISO를 제가 설정한 최대값인 ISO 3200 까지 조정합니다.
무대와 배우
거리에서 촬영할 시간이 몇 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 시간 안에 갑자기 뭔가 멋진 순간이 완벽하게 형태를 띠고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해서야 비현실적인 소망일 뿐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도 있지만, 드물죠. 그리고 넓은 면적을 담아내려 한다면 사물을 눈에 담기 어렵습니다. 런던 시내 전체를 촬영하려 한다면 쓸만한 사진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런던의 어느 번화한 한구석에 서 있으면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죠. 그래서 저는 공공장소에 도착하면 빛 상태부터 살피고, 공간과 건축물을 둘러본 다음 배경, 교회 첨탑, 큰 탑이나 기둥이 늘어선 거리, 주변 풍경이 비친 유리 벽 같은 것을 봅니다. 저는 완전히 텅 비어 있을 때조차 멋진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이나 무대를 찾아보려 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진을 이루는 절반이 완성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멋진 순간이 일어나기 시작하게 되죠. 그러면 이제 배우들이 도착해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럭저럭 붐비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적당히 기다리기만 하면 온갖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매일의 일상만큼 특별하고 예측불허인 소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거리 사진의 정수이자, 거리 사진의 시들지 않는 매력인 셈입니다.
거리 사진을 정의하는 것: 장소냐 테마냐
거리 사진은 하나의 독립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골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장소나 테마를 중심으로 사진을 배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더 많은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 같은 곳에 몇 번이고 돌아가 볼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저는 일정이 바쁜 상업 사진가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좋고 몇 시간 정도 여유가 생기면 손쉽게 나가볼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합니다.
지난 몇 주 동안은 Fujifilm X100V를 들고 나가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근위대 교대식을 구경하려고 모인 관광객을 촬영했습니다. 약 2,000m² 정도 되는 면적인데, 며칠 동안 사람 구경을 하면서 가장 좋은 무대가 어디인지 파악했고, 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을 높이 든 군중의 모습같이 충분히 예상한 사진도 얻을 수 있었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도 포착했죠. 군복을 입을 어떤 남자가 햇빛 아래 서서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나 딸을 안고 아기 인형을 종이봉투에 담아놓은 아버지 사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사진은 시간을 들이고 인내심을 가지면 얻을 수 있는 결실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사진을 찍게 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사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예측할 수 없는 거리사진가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