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조금 전을 되돌아보는 시간
저는 이 글의 브리핑을 위해 제게 큰 의미가 있는 한 해 동안의 촬영 기록을 돌아보았습니다.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2020년이 제게 가장 큰 의미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사적인 의미에서의 일생은 물론 사진이라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물론 제게는 다년간의 사진 자료가 쌓여 있습니다. 2008년 이래로 웨딩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왔고, 직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촬영한 건 기간이 훨씬 더 길죠. 2008년 이후부터의 세월은 거의 전적으로 Fujifilm 카메라와 함께했는데, 그간 겪은 여정을 되돌아보면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이 많습니다. 대체로 제가 직접 찍은 제 가족들의 사진이지만 일부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웨딩 사진이고, 제가 담아낸 사회의 일면도 있어요.
그렇지만 2020년이 아직 네 달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저는 올해를 가장 영향력 있는 한 해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해도 평소처럼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면 지금쯤 웨딩 사진 프로젝트를 일곱 건 마쳤을 테고, 8월이 되기 전에 10개가 더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 건은 어떻게 촬영을 마쳤는데 나머지는 전부 취소되고 말았죠.
비즈니스 면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미 촬영을 마친 결혼식과 이곳 영국에서 봉쇄령(lockdown) 정국 동안 생활한 기억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사실이요. 저는 이번 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기억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거든요. 이런 기억의 조각들의 큐레이터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의 중요성도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도 말이죠.
팬데믹 초기에 저는 런던 시내 법원 지구에 있는 유명한 템플 처치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퍼져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크나큰 영향을 미칠 줄은 전혀 몰랐죠.
저는 항상 사진이란 꼭 훌륭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고, 중요한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제 사진은 가능한 한 완벽하기를 바라지만, 제게 예외의 여지 없이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는 바로 순간입니다. 기억. 느낌. 감정.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한 쌍의 부부로서 처음으로 식장 통로를 걸어 나오는 순간에 두 사람의 마음속에 울리는 것들 있잖아요. 그리고 예식이 끝난 직후 하객들이 신혼부부를 안아주고 축하 인사를 해줄 때, 촘촘히 엮인 순간들 속으로 그런 감정들이 흘러넘치죠.
제 경우 이 결혼식의 기억은 아마도 이때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결혼식 사진을 찍을 일이 없겠다는 사실까지 범위를 넓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이날의 기억이 우선은 행복한 사랑의 결실을 맺은 날이겠지만, 그와는 모순되게도 애초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떠올리는 기억이 되기도 하겠죠.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전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됐습니다.
전 운이 좋아요. 아주 운이 좋죠. 일은 뚝 끊겼지만, 비바람을 피해 몸을 누일 곳이 있고 저를 응원하고 아껴주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때때로 괴로운 지점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대체로 애정과 웃음, 고조된 감정이 함께한 시기였어요. 저희 가족은 아이들 둘, 반려견 두 마리, 기니피그 두 마리와 비교적 작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진 것을 최대한 유익하게 활용했답니다. 제가 거실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텐트를 치고, 요리하거나 놀면서 전반적으로 매일을 “학교 안 가는 날이 하루 더 늘었다”고 받아들이면서 지냈어요. 이런 시기에 중요한 요소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가족으로서 언젠가 되돌아보고, 많은 감정을 담아 함께 한숨을 쉬게 될 순간들 말입니다. 그때는 입술을 앙다물고, 이 시기를 견뎌내기 위해 얼마나 자기 극복을 연마하며 지냈는지 떠올리겠죠.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직은 봉쇄가 풀리지 않은 시점입니다. 혼란에서 벗어나 몇 달이 지난 뒤에 회상하면서 쓰는 게 아니에요. 이것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사실적인 사진입니다.
특히 지금 이 시기에 더 두드러지지만, 전반적으로도 우리는 매일같이 이미지의 홍수에 휩싸여 삽니다. 그런 이미지란 대개 “스냅샷”, 셀피, 인스타그램 사진 같이 정말 멋진 것도 가끔 있지만 대체로 약간 영혼이 없는 사진들이죠. 버튼과 다이얼이 달린 실물 카메라를 손에 쥐면 저는 휴대전화로 찍는 것보다 좀 더 사려 깊은 장면을 촬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장면들입니다. 2020년인 지금 말입니다.
저는 봉쇄령으로 집에 갇혀 지내는 동안 바로 손이 닿는 곳에 X100F를 두고 지냈지만(X100V는 아직 써보지 않았습니다), GFX100도 집에 가져왔습니다. 제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하거든요. GFX100은 밀폐된 공간에서 이미지를 기록할 수단으로는 좀 과해 보일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로는 그런 면이 있는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이 모델 덕분에 제 흥미를 끄는 다른 분야도 탐구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 아이들을 피사체로, 아주 격의 없는 인물사진을 몇 장 찍어봤어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찍지 않았을 방식으로 인물사진을 찍어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확연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아주 확실한 표식이 되어준 셈이랄까요.
지금은 하루하루가 그 이전의 다양한 모습을 펼쳐 보여주는 나날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섞여 하나가 되지만 한 가지만은 변치 않습니다. 사진이 꼭 훌륭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의미를 담는 것이 먼저죠.
약력
Kevin Mullins는 영국 잉글랜드 맘스버리에서 활약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2011년부터 Fujifilm X-Photographer로 활동해 왔으며 지금은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령으로 자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링크
https://instagram.com/kevinmullinsphotography
https://f16.click
https://www.kevinmullinsphotography.co.uk
https://www.ministryofshadows.co.uk